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제국 (문단 편집) === 전성기 === 일본은 점차 [[제국]]을 표방했다. 이에 따라 국가를 개혁하고 군사력을 완전히 서구식으로 개편하여 증강하였다. 1870년대 [[사쓰마 번]]의 속국이던 [[류큐왕국]](현재 [[오키나와현]] 지역)의 강제 병합을 시작으로 [[청일전쟁]](1894)에서 승리하여 [[시모노세키 조약|타이완 섬을 병합하고]], [[러일전쟁]](1904)에서 승리하며 [[일본령 가라후토|남사할린을 병합했으며]], 뒤이어 [[대한제국]]과 [[을사조약]], [[정미조약]] 등을 체결하면서 대한제국의 국권을 차례차례 가져간 끝에 이후 1910년 8월 29일 [[경술국치|대한제국을 강제로 완전히 병합하여]] 35년간 한반도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다. || [[파일:일본과 러시아에 압사당하는 한국.jpg|width=100%]] || || [[러일전쟁]] 당시 정치풍자 그림엽서 || 또한 러일전쟁 승리 후 한반도를 기반을 군사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철도와 교통망을 개설하고 동시에 식민지가 된 조선에서 합법적으로 약탈하며 국력을 쌓으면서도 [[만주]] 군벌 [[장쭤린]]과 밀착하며 만주를 먹기 위해 후원국으로 도와주면서도 관동군을 창설해 [[중국 대륙]]을 야금야금 먹기 시작한다. 이후 일본은 쇼와 덴노 이후 [[만주사변]]을 통해 만든 괴뢰국 만주국과 몽강국을 만들어 속국으로 삼는다. 일본의 [[식민지]] 대상이었던 대한제국과 같은 국가들은 당시 [[일본군]]에 비해 한 주먹거리도 아닐 만큼 [[군사력]]이 빈약하였고, 점령하는 데 별 다른 어려움이 없었으며 일본과 그나마 붙을 수 있는 아시아의 군대는 무장력을 지닌 장제스의 국민당군 뿐이었다.[* 대한제국 같은 경우 갑오개혁을 실패하고 살아남은 [[개화파]]들이 식민지화에 앞장섰다.] 그러던 와중 [[사라예보 사건]]을 기점으로 발발하여 유럽전역에 펼쳐진 [[제1차 세계 대전]]과 이후의 짧은 [[전간기]] 사이, 모든 [[유럽]]이 전쟁물자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바람에 일본에 발주를 넣었고 군수물자를 수출하던 일본은 호황을 맞이했다. 일본은 이로써 [[러일전쟁]]에서 입은 손실을 어느정도 만회했고, 그동안 외국에 진 모든 채무를 갚은 것과 동시에 수십억 엔의 순채권국이 되어 장차 긴 전쟁을 치를만한 국력도 조금 쌓았다. 이후 [[중일전쟁]] 이전까지는 호황의 부가 효과로 서민 경제도 어느 정도 나아지는 효과를 얻었는데 이때가 일제의 전성기였다. 이 [[다이쇼 데모크라시|다이쇼 시대]]는 아무래도 '그래도 그 때는 우리가 잘나갔지'라는 향수가 있어서 그런지 [[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]]와 함께 일본 서브컬처 등에서 꽤나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. 이와 관련해 나오는 제국 시대 일본의 풍경화나 그림들도 대부분 이 때를 묘사했다. 이런 경향을 일컬어 [[다이쇼 로망]]이라고도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